남원시 "서남대 폐교로 지역경제 침체"
설립 부지 확정…사유지 매입 추진
"소유주와 협의 난항…10% 사들여"
의료계 "의료 교육 질 저하" 반대
복지부 "국회서 법 통해 결정할 문제"
시 "2018년 정부가 '남원 설립' 발표"
"공공의대에 대한 설립 부분은 국회에서 법을 통해 결정할 문제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이 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전국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 정책의 철회와 원점 재논의를 요구하는 데 대한 정부 입장을 묻자 나온 답변이었다. 손 대변인은 "이것(공공의대 설립)은 정부가 철회를 한다, 만다를 결정할 문제라기보다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 문제들이 충분히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확정이 안 됐다"는데 전북 남원시는 공공의대 설립에 이미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남원시는 2일 "2018년 4월 11일 '서남대 의대 정원을 활용해 전북 남원에 공공의대를 설립한다'는 보건복지부 발표를 토대로 지난해 3월 토지 보상 협의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2018년 4월 당시 복지부는 더불어민주당과 당·정 협의를 거쳐 국립공공의료대학(원) 설립을 결정했다. 당시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은 전북 남원 지역에 위치하도록 설립하고, 국립중앙의료원 및 전북 지역공공병원 등 전국 협력병원에서 순환 교육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공공의대 정원은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하고, 2018년 하반기 법령을 마련해 2022년 또는 2023년 개교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법안 통과가 불발되면서 개교 시점이 2024년 3월로 미뤄졌다.
교육부도 2018년 8월 1일 '국립공공의과대학(원) 설립안'을 심의·의결했다. 4년제 의학전문대학원 형태로 정부가 4년간 학비 전액을 지원하는 대신 학생들은 졸업 후 도서 지역·농어촌 등 의료 취약지에 배치돼 일정 기간 의무 복무하는 내용이다. 김태년 의원이 2018년 9월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는 전북이 지역구인 무소속 이용호(남원-임실-순창)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성주(전주병) 의원이 지난 6월 5일과 30일 각각 '이용호안'과 '김성주안'으로 불리는 공공의대 설립 법안을 발의하며 재추진되고 있다.
애초 공공의대를 둘러싼 논란은 서남대 폐교가 발단이 됐다는 게 남원시 주장이다. 1991년 설립된 서남대는 설립자 이홍하(82)씨가 교비 333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12년 12월 구속되면서 경영난과 신입생 감소 등 추락을 거듭하다 2018년 2월 문을 닫았다. 당시 의대생 309명은 전북대·원광대에 특별 편입학했다.
서남대 주변 상가 40개 중 35개, 원룸 58개 중 30개가 폐업했다. 택시업계와 시내 상권도 타격을 받았다. 남원시 인구 붕괴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지난 7월 기준 8만1028명으로, 2000년 10만3571명에서 2만명가량 줄었다. 서남대 폐교로 취업과 대학 입학 연령대인 20대의 타 지역 유출이 이어져 인구 고령화와 고용난도 심화됐다.
지역 경제가 침체하면서 남원시는 공공의대 설립에 더욱 행정력을 쏟아붓는 분위기다. 그러나 최근 의료계 집단 반발에 이어 학교 부지 매입까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남원시는 "현재까지 5억원을 들여 소유주 2명으로부터 세 필지(3686㎡)를 사들였다"고 밝혔다. 남원시에 따르면 복지부는 2018년 10월 25일 공공의대 설립 부지로 서남대를 비롯한 후보지 5곳 중 남원의료원 옆 남원시 소유 인라인로드경기장 부지(2만6328㎡)와 의료원 맞은편 사유지(3만8464㎡) 등 2곳(총 6만4792㎡)을 결정했다. 서남대는 기존 학교 부지와 건물을 활용할 수 있지만, 청산 절차 등 걸림돌이 많아 배제됐다.
복지부가 지난해 5~9월 실시한 공공의대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 따르면 공공의대 본관(강의동)은 남원의료원 옆 인라인로드경기장, 기숙사와 기타 시설은 남원의료원 맞은편 사유지에 들어선다.
사유지에는 주택과 건물, 밭, 분묘(무덤) 200기 등이 있다. 소유주는 모두 15명이다. 지난해 8월 감정 평가액은 84억원이다.
남원시는 소유주들에게 개별적으로 매수 의사를 타진하고 있지만, 대부분 협의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감정 평가액이 시가보다 낮은 데다 공공의대 부지로 쓰인다는 사실을 아는 소유주들이 시가보다 높은 값을 부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남원시 설명이다.
남원시에 따르면 공공의대 설립은 남원시가 대학 부지를 제공하고, 복지부가 건물 건축을 맡는 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남원시는 2018년 말 공공의대 관련 예산 66억원을 확보한 상태다. 남원시가 부지 매입 비용 63억원, 복지부가 건축 설계비 3억원을 세웠다. 복지부는 공공의대 설립 예산으로 260억원(건축비 240억원 포함)을 책정했다.
하지만 최대 변수는 의료계 반발이다. 의료계가 공공의대에 반대하는 핵심 이유는 '의료 교육의 질 저하' 문제가 꼽힌다. 공공의대는 학사 과정이 없는 석·박사 과정으로 의료계에서는 이미 실패한 정책이란 평가가 나오는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의 재연으로 보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의료 취약지 문제는 특수 목적을 띤 공공의대를 설립한다고 풀리는 게 아니다"며 "근본적인 고민 없이 정책이 추진되면 공공의대 졸업 후 의무 복무 기간만 채울 게 뻔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달 홈페이지에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남원시가 소속 공무원들에게 조사 참여를 독려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조작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공공의대 법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높은 가격에 토지 보상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남원시 사이에 사전 합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공공의대 게이트' 의혹까지 불거졌다.
남원시 측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다만 부지 소유주들이 끝까지 매각을 거부하면 최후 수단으로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서 사업계획 승인을 받아 토지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남원시 관계자는 "공공의대 법안만 통과되면 나머지 행정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며 "설립 부지가 확정된 만큼 남원시로선 가능한 한 빨리 부지를 매입하는 데 최선을 다할 뿐 '언제까지 마무리하겠다'는 데드라인은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news.joins.com/article/2386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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