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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4

김기복씨의 주말농장 성장기

by 코코쿠쿠 COCOKUKU 202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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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본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서 요즘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것도 가끔 실패하는 것도 꽤 신선한 경험이다. 그런데 본업이면 내 체질에 안 맞을 것 같다. 초등학교 때 강낭콩 잘 키웠다고 선생님이 칭찬해 주신 그 날이 계기였을까...?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수확의 뿌듯함을 직접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아이가 하고 싶어하면 가족끼리 주말농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다.

물론 농사에 대해 지식이 전무하니깐 할 수 있었던 용감한 생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바쁜 와중에 주말농장을 경험삼아 시작하게 된 이유 중에서 나중에 아이와 함께 주말농장할 때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허세 가득한 이유도 있는 내가 이렇게 농작물 재배에 은근히 진심이 되게 될 줄은 몰랐다.

 

엄마가 어릴 때 화분에 달걀 비료를 넣으셨던 기억을 되짚어 천연비료도 만들어 보고, 직접 만든 비료의 효과가 재배량의 증가로 이어지는 결과도 느껴보고 아직까지는 좋은 기억이 많다. 물론 최근에 상추모종을 고의로 쥐어뜯고 꺾고 뿌리채 뽑는 불미스런 사건이 두 번이나 있었지만, 다 나의 부덕의 소치이겠지... 한 번은 참았는데, 두 번이나 연속으로 그런 일이 생기다 보니 솔직히 좀 짜증나고 말통 2개에 잔뜩 길어온 물도 그냥 안 주고 싶었던 적이 있다. 

 

사진은 그나마 낫다... 이미 뿌리채 뽑힌 상추는 정리하고 나서 찍은 사진이니까...

 

하지만 관리자에게 직접 사진과 함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사실을 알렸고, 농작물 훼손 및 비매너 행위에 대한 전체공지 문자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현재까지는 별 일 없이 무탈하게 농작물이 잘 자라고 있다. 아마 내가 주말농장을 한 건 1년이 채 안되지만, 이 곳에서 많은 분들이 주말농장을 여러 해 동안 하셨을 텐데, 내가 이번에 겪은 것과 같은 비매너 행위는 숱하게 있어왔을 것이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비매너 행위를 묵인하는 건 그냥 기본적인 예의의 부재가 만연한 지금의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여지가 1도 없다는 점에서 그리 보기 좋은 태도는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해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고 고작 주말농장일 뿐인데 CCTV를 달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냐는 주변의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3일간 2번의 농작물 훼손을 그대로 방관하기엔 나는 주말농장을 공짜로 하고 있지 않고, 이 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사용료를 내고 있고 관리인은 분명히 존재한다. 관리인보고 훼손된 농작물을 물어내라는 것도 아니고, 내 밭에서 이러이러한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정도는 주말농장의 비매너행위와 낮은 도덕적 잣대를 개선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조언은 때론 참 기운이 빠지게 한다. 나도 착한 척 잘하고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이 되는 거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항상 괜찮으면 될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얘기해야 해서 이렇게 반기를 드는 건 절대 아니다. 사실 이런 일은 반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되기도 할 뿐더러, 사용료가 없는 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사용료에 대한 정당한 시정요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농작물 훼손 사건에 대해서 속상하다는 말을 했더니,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해서 황당했다.

 

"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주말농장을 지금 몇 년째 하는데, 매년 그래.

올해는 수박도 가져가고 참외도 가져가고, 감자도 가져갔더라고?

매번 있는 일이긴 한데, 안 바뀌더라~~~"

 

뭔소리지 이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말농장 선배로서 훈수를 두려고 한 게 아니라 나의 속상함에 공감하고자 저런 표현을 쓴 것이겠지만, 나는 저 얘기를 듣고 더욱 마음이 답답했다. 몇 년째 같은 주말농장에서 공공연히 자행되었던 일인데, 왜 아무도 그 불합리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았는지... 답답했다. 타인의 비매너 행위를, 그 비매너 행위로 인한 피해를 받은 사람이 왜 그런 만행에 대해 왜 그랬을까...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하지...? 정말 답답하고 어리석어 보였다.

 

 

그런데 더 어이 없는 일은 농작물 훼손 관련해서 농장 관리자 측이 전체공지문자를 보낸 날, 다시 생겼다. 

 

" 오늘 아침에 농장에서 공지문자 왔더라? 

허허... 그래도 바뀌는 건 없을 텐데

문자가 오긴 오네 껄껄껄"

 

이게 뭔 소리지 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말넘심이지만 좀 어이가 없었다. 저 얘기는 정당한 사용료를 지불하고 주말농장을 하고 있는 내가 내 농작물에 피해를 입어서 관리자에게 관리의 필요성을 알린 건데, 그 수고로운 과정을 겪은 나에게 고작 한다는 말이 " 그래도 바뀌는 건 없을 텐데"라니... 그 말이 내게 진짜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내가 요즘 예민해져셔 그렇겠지... 속으로만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겼다. 

 

"문자가 오긴 오네" 하면서 신기해 하는 그 해맑은 태도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인 밭의 농작물 절도 사례에 대해서 얘기조차 안해보고 뒤에서 사람들한테 내 농작물 도둑맞았어~~~ 라고 불평한 것임을 반증하는 말이기 때문에 다른 방면으로 답답했다. 수년간 밭의 사용료를 내고 적법하게 밭을 일궈왔다는 사람이 단 한 번도 관리자에게 이것에 대해 말을 해볼 생각을 안해봤다는 게 참... 솔직히 한심했다. 

 

나도 관리자에게 문자를 보내기 전에 정말 많이 고민했다. 문자를 보내봤자 결과가 달라지는 게 없어서 고민한 것이 아니라, 남의 농작물 훼손과 농작물 절도는 기본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할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 아닌가?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여기에 애기들이 와서 농작물을 가꾸는 것도 아닐 텐데 이런 인간들은 왜 이러고 살까 싶은 안타까운 마음에 고민을 많이 했다.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이 관리자가 죄송하다는 말 하나로 퉁치거나 없는 일로 넘어갈 수도 있을 거라고 어느 정도 결과를 예상하고 보낸 문자이기에 그렇게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공지문자가 다음날 아침 주말농장을 하는 사람 전체문자로 받게 되었고, 그 날 이후로 내가 할당받은 밭에 더이상의 농작물 피해는 없었다. 

 

이 결과도 마냥 긍정적일 수 없는 이유는 산짐승이 밤에 내려와서 상추만 짓밟고, 뿌리채 뽑고 신나게 놀고 갔다면(그럴 일은 없지만) 공지문자가 왔든 오지 않았든 간에 같은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근데 그 이후로 약 한달이 지나고 있는데, 아직까지 나의 텃밭의 안녕은 지켜지고 있다. 누가 저지른 일인지 예상가는 바이기에... 씁쓸한 감정은 지우기가 어렵다.

 

 

하지만 과거의 감정에 연연해서 지금의 기분까지 망치고 싶진 않다. 대파를 수확해서 양가 부모님께 드렸고, 너무 좋아하시는 그 모습에 뿌듯했던 그 마음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감정이다. 기쁜 마음으로 대파를 수확한 위치와 슬픈 마음으로 구멍이 뻥... 뚫린 훼손된 상추모종을 뽑아낸 위치를 모두 새로운 쪽파 종자를 심고 오는 길은 기분이 참 묘했다. 이번에 키우게 된 쪽파는 안좋은 일이 생기지 않게 더 잘 관리해 줘야 겠다는 마음을 더욱 다잡았던 것 같다.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이 많다. 그리고 거기에 일일히 대응하지 말고 숱한 자극에 무뎌지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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